새벽에 잠에서 깼다. 무엇 때문인지 딱 짚어 말하기는 어렵고, 그냥 텅 빈 느낌이었다. 여러 일들이 내마음을 불안하게 했다. 그 자리를 채울 방법을 몰라 하나님을 찾았고, 성경을 폈다.
처음 읽은 것은 빌립보서 4장이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래서 그대로 했다. 정리되지 않은 마음을 정리하지 않은 채로 하나님께 다 털어놓았고, 구했다.
그다음 시편 6편과 28편을 읽었다.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마음 상태가 바뀌는 장면이었다. 두려워하며 탄식하던 시인이 어느 순간 확신에 차서 찬양한다. 그런데 그 사이에 상황이 바뀌었다는 말은 없다. 어떻게 저렇게 달라질 수 있을까 싶어 다시 읽었다.
다시 읽으니 그 전환의 한가운데에 같은 말이 있었다. "들으셨다." 6편 8절은 "여호와께서 내 울음 소리를 들으셨도다"이다. 28편에서는 2절의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가 6절에서 "내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심이로다"로 바뀐다. 문제가 풀려서 마음이 바뀐 것이 아니었다. 들으셨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바뀐 것이다.
그러다 6편 9절에서 멈췄다. "여호와께서 내 간구를 들으셨음이여 여호와께서 내 기도를 받으시리로다." 조금 전 빌립보서의 "기도와 간구로 아뢰라"는 말씀을 따라 기도했는데, 시편이 그 기도와 간구를 들으셨다고 대답하고 있었다. 우연히 펼친 순서가 아니라 대화의 순서처럼 읽혔다.
그때 알았다. 하나님이 내 이야기를 들으셨구나. 공허했던 자리가 그 확신으로 채워졌고, 내가 구했던 것까지 얻게 되었다.
지금 내 마음은 시편 28편 7절 그대로다.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그를 찬송하리로다." 빌립보서는 기도한 뒤에 하나님의 평강이 마음과 생각을 지키실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 평강이 무엇인지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들으신다는 것, 그것 하나로 충분히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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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를 들으셨다
2026.09.24
- 창조와 진화는 함께 설 수 있는가? 과학과 기독교 신앙의 사실관계 정리 2026.09.06
- 그 편지에는 '하나님'이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 에스라 4~6장 2026.08.24 1
내 이야기를 들으셨다
창조와 진화는 함께 설 수 있는가? 과학과 기독교 신앙의 사실관계 정리
최근 교회 안에서 진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몇 가지 질문을 들었다.
“시조새가 진화의 증거라는 확실한 증거를 하나만 가져와 봐라.”
“소진화는 몰라도 대진화는 과학계에서도 인정하지 않는다.”
“창조와 진화는 절대로 같이 설 수 없다.”
처음에는 단순한 의견 차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조금 찾아보니, 이 세 문장에는 서로 다른 종류의 문제가 섞여 있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상당 부분 과학적 사실관계의 문제다. 실제 화석이 무엇을 보여 주는지, 과학자들이 실제로 무엇을 받아들이고 있는지는 자료를 확인하면 어느 정도 답할 수 있다.
세 번째는 조금 다르다.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신앙과 진화라는 자연 과정이 양립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과학뿐 아니라 성경 해석과 신학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누군가를 설득하거나 공격하기보다, 내가 직접 자료를 찾아보며 확인한 것들을 정리해 보려고 한다.
먼저 한 가지: 과학에서 ‘증거 하나’란 무엇일까
과학 이론은 보통 “결정적인 증거 하나” 때문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화석, 유전자, 발생학, 지질학, 실제로 관찰되는 종분화처럼 서로 독립적인 자료들이 계속 같은 방향을 가리킬 때 이론에 대한 신뢰가 높아진다. 그럼에도 “그래도 하나만 보여 달라”고 한다면, 진화의 전이 화석을 이야기할 때 가장 쉽게 보여 줄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시조새의 베를린 표본이다.
‘증거 하나’를 고른다면: 시조새 베를린 표본
시조새의 유명한 베를린 표본은 1874~1875년 무렵 독일 바이에른의 졸른호펜 석회암에서 발견되었다. 약 1억 5천만 년 전 지층에서 나온 화석이다. 이 표본이 흥미로운 이유는 한 동물의 몸 안에 오늘날 우리가 각각 공룡 쪽 형질과 새 쪽 형질이라고 부르는 특징들이 동시에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공룡·파충류 쪽 특징으로는
- 이빨이 있는 턱
- 20여 개의 척추뼈로 이루어진 긴 꼬리
- 서로 붙지 않은 세 손가락과 발톱
- 현생 조류와 다른 원시적인 가슴뼈 구조
등이 있다.
반면 동시에
- 좌우 비대칭의 비행깃
- 차골, 즉 위시본
- 새와 가까운 발가락과 골격 배열
같은 조류의 특징도 가지고 있다. 중요한 점은 이 특징들이 서로 다른 화석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한 개체에 함께 존재한다는 것이다.

시조새가 현대적인 의미에서 “새인가 공룡인가”라는 분류 문제는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다. 분류 이름을 무엇으로 붙이더라도 화석에 있는 이빨, 꼬리뼈, 손가락, 비행깃은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도대체 이것을 새라고 해야 하나, 공룡이라고 해야 하나?”라는 질문 자체가 두 집단 사이의 경계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칼로 자른 듯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런데 시조새는 위조된 화석 아닌가?
이 이야기는 실제로 역사적 배경이 있다.
1985년 천체물리학자 프레드 호일과 찬드라 위크라마싱헤가 런던의 시조새 표본에 대해 위조 의혹을 제기했다. 주장은 대략 이랬다.
실제 화석 위에 인공적인 시멘트층을 얇게 바른 다음 현대 새의 깃털을 눌러 깃털 흔적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호일은 상당히 유명한 과학자였기 때문에 이 주장은 큰 관심을 받았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 다음이다. 런던 자연사박물관은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며 무시하지 않고 실제 표본을 다시 조사했다. 앨런 채리그를 포함한 연구진이 화석을 정밀 분석했고, 세 가지 중요한 사실을 확인했다.
첫째, 머리카락 굵기의 미세한 자연 균열이 화석의 본판과 대응판에서 정확하게 이어졌다. 나중에 인공 시멘트층을 발랐다면 설명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둘째, 깃털 자국 위에 형성된 수지상 결정들이 화석의 양쪽 판에서 서로 맞물렸다. 오랜 지질학적 과정을 거쳐 형성된 구조였다.
셋째, 위조설이 요구하는 인공 시멘트층 자체가 발견되지 않았다.
이 결과는 1986년 《Science》에 발표됐다. 논문의 제목은 아주 직접적이었다. “Archaeopteryx Is Not a Forgery” — “시조새는 위조가 아니다.”[4]

그 이후 시조새 표본은 오히려 더 늘어났다. 현재까지 알려진 표본은 14점이며, 서로 다른 시기와 장소에서 독립적으로 발견됐다. 여러 표본에서 깃털 흔적도 확인된다. 따라서 오늘날 시조새 위조설은 과학계에서 살아 있는 논쟁이라기보다 1980년대에 제기되었다가 실제 표본 검사를 통해 반박된 역사적 주장에 가깝다.
시조새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다
시조새가 1861년에 처음 발견됐을 때는 상황이 달랐다. 당시에는 정말로 이런 형태의 화석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중국 랴오닝 지역에서 깃털 달린 공룡들이 대거 발견되면서 그림이 크게 바뀌었다.
예를 들어,
시노사우롭테릭스(Sinosauropteryx)에서는 솜털과 비슷한 원시 깃털이 발견되었다.
카우딥테릭스(Caudipteryx)는 발달한 깃털을 가지고 있었지만 현대 새처럼 날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미크로랍토르(Microraptor)는 앞다리뿐 아니라 뒷다리에도 긴 깃털을 가지고 있어 이른바 ‘네 날개’ 구조를 보였다.
그리고 안키오르니스(Anchiornis)는 시조새보다 더 오래된 지층에서 발견된 깃털 수각류다.[8]

그래서 오늘날 공룡에서 새로 이어지는 진화 과정은 더 이상 “공룡 → 시조새 → 새” 라는 단순한 한 줄짜리 사슬로 그려지지 않는다.
실제 진화계통은 훨씬 복잡하다. 여러 종이 갈라지고 사라지는 가지 많은 나무 또는 덤불에 가깝다. 시조새도 반드시 현대 새의 직계조상일 필요가 없다. 진화에서 중요한 것은 “이 화석이 정확히 누구의 할아버지인가?”가 아니라, 특정 시기에 어떤 형질의 조합을 가진 생물들이 실제로 존재했는가이다.

“그런데 중간 화석이 더 있어야 하지 않나?”
이 질문에는 재미있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 A와 C 사이의 중간 화석 B를 발견했다고 해보자.
그러면 이제
A와 B 사이의 화석은 어디 있느냐,
B와 C 사이의 화석은 어디 있느냐
라는 두 개의 새로운 틈이 생긴다.
그 두 곳에서 다시 화석을 발견하면 틈은 네 개가 된다. 따라서 “모든 순간의 중간 화석을 가져오라”는 요구는 원리적으로 끝날 수가 없다. 과학이 보는 것은 모든 개체의 완전한 족보가 아니라, 발견된 화석들의 형질이 어떤 역사적 패턴을 만드는가이다.
화석을 이렇게 많이 찾았다는 것이 왜 중요한가
생물이 죽는다고 대부분 화석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거의 전부 사라진다.
뼈가 화석으로 남으려면 빠르게 묻히고, 분해가 제한되고, 이후 지질작용 속에서도 보존되어야 한다. 깃털처럼 부드러운 조직까지 남으려면 조건은 더욱 까다롭다. 그렇게 묻힌 뒤에도 해당 지층이 수천만 년 후 지표에 노출되어야 하고, 우연히 사람이 그 장소를 발굴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희박한 조건을 뚫고 시조새만 14점이 발견되었고, 주변 계통의 깃털 공룡들도 수십 종이 발견되었다.
여기서 더 흥미로운 것은 발견의 순서다.
다윈은 1859년 『종의 기원』에서 자신의 이론이 옳다면 큰 생물 집단 사이의 중간적인 형태들이 과거에 존재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당시 화석 기록이 빈약하다는 것을 자신의 이론이 가진 큰 난점 중 하나로 인정했다. 그런데 불과 2년 뒤 시조새가 발견됐다. 이후 새가 수각류 공룡과 연결된다면 깃털을 가진 비조류 공룡들이 더 존재했어야 한다는 예측이 생겼고, 1990년대 이후 실제 화석들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과학 이론의 강력한 특징 중 하나는 단순히 이미 알려진 사실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것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2025년에도 새로운 시조새 연구가 나왔다
시조새 연구는 19세기에 끝난 이야기가 아니다.
2025년 5월, 14번째 시조새 표본인 이른바 '시카고 표본’에 대한 분석이 《Nature》에 실렸다.[1] 연구팀은 CT와 자외선 촬영 등을 이용해 뼈와 연조직, 깃털을 조사했다. 그 과정에서 시조새에서는 이전에 명확히 확인되지 않았던 3열 날개깃, 즉 tertials가 확인되었다. 이 깃털은 날개와 몸통 사이의 공간을 덮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비행 기능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구조다. 2018년에는 시조새의 날개뼈 단면을 분석해 적어도 짧은 거리의 능동 비행에 적합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는 연구가 발표됐고,[3] 2014년에도 새로운 표본의 깃털을 정밀 분석한 연구가 《Nature》에 발표됐다.[2]

165년 된 화석에 대해서도 새로운 측정 기술이 등장하면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시조새에 대한 세부적인 계통분류와 비행 방식은 계속 수정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시조새가 무너지고 있다”는 뜻이 아니라 과학 연구가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뜻에 더 가깝다.
시조새에 대해 자주 듣는 다섯 가지 이야기
자료를 조사하면서 특히 많이 확인해 본 주장들이 있다.
이야기 1. “시조새는 위조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1986년 《Science》에 발표된 실제 표본 조사에서 위조 가설은 지지되지 않았다.[4] 이후에도 새로운 시조새 표본들이 독립적으로 발견됐다.
이야기 2. “1984년 국제학회에서 시조새가 완전한 새라고 공식 선언됐다”
1984년 독일 아이히슈테트에서 시조새 국제회의가 열린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조사한 자료에서는 학회가 “시조새는 전이화석이 아니라 완전한 새다”라는 공식 결의를 했다는 기록을 찾을 수 없었다. 당시 중요한 논쟁 중 하나는 시조새의 비행 능력이 어느 정도였는가였다. 그리고 여기서 “시조새를 새로 분류한다”와 “시조새에게 공룡 쪽 형질이 없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시조새를 ‘원시적인 새’라고 불러도 이빨과 긴 꼬리와 발톱 손가락은 그대로 존재한다.
이야기 3. “2011년 Nature 논문 때문에 시조새는 새가 아니게 됐다”
이 이야기는 절반 정도는 사실이다. 2011년 쉬싱(Xu Xing) 연구팀이 샤오팅기아(Xiaotingia)를 발표하면서 계통 분석 결과 시조새가 기존에 생각했던 위치보다 비조류 공룡 쪽에 가까울 가능성을 제안했다.[5] 하지만 2012년 다른 통계적 계통분석은 시조새를 다시 원시 조류에 가까운 위치에 놓았고,[6] 2013년 새로운 화석 자료를 포함한 연구에서도 다시 논의가 이어졌다.[7] 여기서 중요한 것은 논쟁의 내용이다. 연구자들이 논쟁한 것은 시조새를 계통나무의 정확히 어느 가지에 놓아야 하는가였다.
“시조새에게 공룡과 새의 전이적 형질이 있는가?”를 놓고 싸운 것이 아니었다.
이야기 4. “시조새보다 오래된 완전한 새 프로토아비스가 발견됐다”
프로토아비스(Protoavis)는 실제로 제안된 화석이다. 그러나 보존 상태가 좋지 않고 여러 동물의 뼈가 섞여 있을 가능성이 제기돼, 오늘날 조류 기원을 설명하는 표준적인 화석 증거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9][10]
이야기 5. “한국 교과서에서 시조새는 삭제됐다”
2011년 말 교과서진화론개정추진회가 시조새 내용을 교과서에서 삭제해 달라는 청원을 낸 것은 사실이다. 일부 출판사가 삭제를 검토하면서 2012년 큰 논란이 되었다.
그러나 BRIC이 관련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는 86%가 삭제 절차에 문제가 있다고 답했고, 73%가 시조새가 진화를 설명하는 적절한 예라고 답했다.[19] 한국고생물학회도 반박 입장을 냈고, 이후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의 수정·보완 가이드라인을 거쳐 시조새와 말의 진화 내용은 단순 삭제가 아니라 최신 연구를 반영해 보완하는 방향으로 정리됐다. 당시 《Nature》는 처음에는 “South Korea surrenders to creationist demands”라는 제목으로 사건을 보도했다가, 논란이 정리된 뒤 “Science wins over creationism in South Korea”라는 후속 기사를 실었다.[18]


그렇다면 과학계는 ‘대진화’를 받아들이지 않는가
여기서는 용어부터 구분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교회에서 말하는 소진화는 한 종 안에서 나타나는 비교적 작은 변화를 의미하고, 대진화는 종분화나 공통조상처럼 종의 경계를 넘는 규모의 진화를 가리킨다. 생물학에서는 이 둘을 서로 다른 자연법칙으로 보지 않는다. 변화가 축적되고 집단이 분리되면서 장기간에 걸쳐 더 큰 계통 변화가 생긴다는 것이 표준적인 이해다.
그렇다면 실제 과학자들은 인간과 생물이 공통조상에서 진화했다는 주장 자체를 받아들이고 있을까? Pew Research Center가 미국과학진흥협회(AAAS) 소속 과학자들을 조사했을 때, “인간과 다른 생물은 시간에 걸쳐 진화했다”는 취지의 문항에 2009년 조사에서는 97%, 2014년 조사에서는 98%가 동의했다.[11]

이 질문은 단순히 박테리아의 항생제 내성 같은 변화만을 물은 것이 아니다. 인간을 포함한 생물의 기원을 시간에 따른 진화로 설명하는지를 물은 것이다. 전 세계 여러 국가의 과학한림원이 참여한 IAP도 2006년 진화 교육을 지지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15] 따라서 “소진화는 과학계가 받아들이지만 대진화는 과학계에서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표현은 현재 과학계의 실제 지형을 설명하기 어렵다.
소진화와 대진화 사이에는 정말 벽이 있는가
“작은 변화는 가능하지만 큰 변화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려면 한 가지가 필요하다. 작은 유전적 변화가 계속 축적되다가 어느 지점에서 더 이상 진행되지 못하도록 막는 자연적인 장벽이다. 그런데 생물학에서는 오히려 대진화의 첫 단계인 종분화(speciation) 자체가 관찰되어 왔다. 예를 들어 식물에서는 염색체 수가 배가되면서 한 세대 만에 부모 집단과 생식적으로 격리되는 경우가 있고, 곤충에서도 새로운 숙주에 적응하면서 서로 다른 집단으로 분화하는 현상이 관찰된다.
시간 규모가 다를 뿐이다.
1년 동안의 침식만 본다면 거대한 계곡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랜드캐니언을 설명하기 위해 침식과 전혀 다른 새로운 물리법칙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대진화의 증거는 시조새 하나가 아니다
화석 기록에는 시조새 이외에도 유명한 전이 계열이 있다. 육상 포유류와 고래 사이에는 파키케투스, 암불로케투스, 도루돈 등 여러 형태가 발견됐다. 어류와 초기 사지동물 사이에는 틱타알릭이 있다. 그리고 유전체 증거는 애초에 공통조상의 문제를 다룬다.
대표적인 사례로 자주 언급되는 것이
- 인간 2번 염색체에 남아 있는 염색체 융합 흔적
- 인간과 다른 유인원에서 공유되는 비타민 C 합성 유전자 GULO의 비활성화
- 인간과 유인원의 유전체에서 같은 위치에 발견되는 내인성 레트로바이러스 흔적
등이다.
화석과 유전학은 서로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연구되는데도 비슷한 계통관계를 가리킨다는 것이 중요한 점이다.
그러면 교회는 진화를 거부하는가?
여기서부터는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과학계는 진화를 받아들이는가?”는 비교적 단순한 질문이다. 하지만 "기독교는 진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가?"는 하나의 답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실제로 기독교 교단들의 입장은 상당히 다양하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오래전부터 진화 연구를 허용해 왔다. 1996년 요한 바오로 2세는 진화를 “단순한 가설 이상”이라고 표현했고,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진화가 창조 개념과 모순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국 성공회, 연합감리교회, 미국 복음주의 루터교회(ELCA), 미국장로교회(PCUSA) 등도 진화와 기독교 신앙이 원칙적으로 양립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한다.
반대로 루터교 미주리시노드(LCMS), 하나님의성회 일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등은 진화에 훨씬 부정적이다. 미국장로교 PCA의 경우 창세기 1장의 ‘날’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을 허용하면서도 인간이 동물에서 진화했다는 견해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즉 “교회는 진화를 인정한다”도 지나치게 단순하고, “교회는 진화를 인정하지 않는다”도 지나치게 단순하다.
기독교 내부에 실제로 여러 입장이 존재한다.
기독교 안에는 어떤 입장들이 있는가
크게 나누면 적어도 다음과 같은 스펙트럼을 볼 수 있다.
젊은지구창조론
지구의 나이를 대략 6천~1만 년 정도로 보고 창세기 1장을 자연사의 연대기로 읽는다.
Answers in Genesis,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한국창조과학회 등이 대표적이다.
오랜지구창조론
우주와 지구가 수십억 년 되었다는 현대 과학의 연대는 받아들이지만 생물의 공통조상이나 대규모 진화는 거부한다.
휴 로스와 Reasons to Believe 등이 대표적이다.
창세기 1장의 문학적·고대 근동적 해석
창세기 1장을 현대 과학 교과서처럼 읽기보다 고대 근동 세계의 독자들에게 주어진 신학적 선언으로 읽는다.
존 월튼이나 메러디스 클라인 같은 복음주의 구약학자들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적설계
일부 생물학적 구조는 자연 과정만으로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에 설계를 추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마이클 베히와 Discovery Institute가 대표적이다.
진화적 창조, 또는 유신진화
현대 생물학의 진화 이론을 받아들이면서, 그 전체 자연 과정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 안에 있다고 이해한다.
프랜시스 콜린스와 BioLogos가 대표적인 예다.
“창조와 진화는 같이 설 수 없다”는 것도 하나의 철학적 입장이다
과학과 종교의 관계를 연구한 이안 바버는 대표적으로 네 가지 모델을 구분했다.[27]
갈등: 둘 가운데 하나만 참일 수 있다.
독립: 과학과 신앙은 서로 다른 종류의 질문을 다룬다.
대화: 두 분야가 일부 영역에서 서로 대화할 수 있다.
통합: 과학적 설명을 보다 큰 신학적 세계관 안에서 이해할 수 있다.
“진화가 참이면 창조는 거짓이고, 창조가 참이면 진화는 거짓이다”라는 주장은 이 네 가지 가운데 갈등 모델을 선택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갈등 모델을 일부 근본주의적 기독교인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리처드 도킨스 같은 강한 무신론자들도 사용한다는 것이다. 양쪽 모두 “진화와 하나님은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 라는 전제를 공유하고,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만 다르다. 하지만 기독교 역사 전체가 반드시 이 전제를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기독교 안에서 창조와 자연 과정을 함께 생각해 온 오래된 방법
진화론이 나오기 훨씬 이전부터 기독교 신학에는 하나님과 자연 과정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한 여러 개념이 있었다.
‘두 책’이라는 전통
고전적인 기독교 전통에서는 하나님이 자신을 두 개의 ‘책’을 통해 보여 주신다고 표현해 왔다.
하나는 성경, 다른 하나는 자연이다.
벨직 신앙고백 2조에도 이러한 표현이 등장한다. 두 책의 저자가 같은 하나님이라면, 제대로 읽은 성경과 제대로 읽은 자연은 궁극적으로 모순될 수 없다는 사고방식이다. 따라서 충돌처럼 보이는 것이 있다면 성경의 해석이나 자연에 대한 우리의 해석 가운데 무엇을 다시 검토해야 하는지를 물을 수 있다.
일차 원인과 이차 원인
아퀴나스 이후 기독교 신학에서는 하나님을 궁극적인 일차 원인, 자연 안에서 작동하는 원인들을 이차 원인으로 구분하는 전통이 있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이 비를 주신다”고 고백하는 것과 기압, 수증기, 구름 형성으로 비를 설명하는 것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기상학적 설명이 생겼다고 해서 하나님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같은 논리를 생명의 역사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진화적 창조 입장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진화론이 나오기 1,400년 전에 이미 흥미로운 경고를 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당연히 다윈의 진화론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창세기 문자적 해설』에서 그는 하나님이 창조 세계 안에 일종의 ‘씨앗 원리(rationes seminales)’를 두셨고 그것들이 시간 속에서 전개될 수 있다는 식의 설명을 사용했다.[29]
이것을 현대 진화론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적어도 “하나님의 창조는 모든 것이 한순간에 현재 모습 그대로 나타났다는 의미로만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만이 유일한 전통적 기독교 해석은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더 유명한 것은 그의 경고다. 그는 그리스도인이 자연에 관해 명백히 잘못된 말을 확신에 차서 주장하면, 그 분야를 잘 아는 비기독교인이 그것을 듣고 기독교의 다른 주장까지 신뢰하지 않게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약 1,6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상당히 무거운 말이다.
성경 무오를 강하게 주장했던 B. B. 워필드도 진화 가능성에 열려 있었다
B. B. 워필드는 현대 보수 장로교 신학, 특히 성경 무오 교리를 이야기할 때 빠지기 어려운 인물이다.
그런데 워필드는 동시에 하나님이 진화라는 자연 과정을 섭리적으로 사용하셨을 가능성 자체를 배제하지 않았다.[28]
이 사례는 꽤 중요하다.
성경의 권위를 낮게 보았기 때문에 진화에 열려 있었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성경의 권위를 매우 강하게 주장했던 신학자에게도
“하나님이 창조하셨다”와 “자연 속에서 긴 과정이 있었다”는 두 명제가 논리적으로 반드시 충돌하는 것은 아니었다.
팀 켈러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한국 보수 교회에서 비교적 친숙한 인물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사례는 팀 켈러다.
켈러는 보수 장로교단인 PCA 소속 목회자였다. 『팀 켈러, 하나님을 말하다(The Reason for God)』에서 그는 자신의 입장을 비교적 분명하게 밝힌다.
“분명히 말해 두자면, 나는 하나님이 모종의 자연선택 과정을 인도하셨다고 생각한다.”[20]
그렇다고 켈러가 모든 형태의 ‘진화론적 세계관’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그는 생물학 이론으로서의 진화와, 진화를 이용해 하나님·도덕·의미까지 모두 설명하려는 철학적 진화주의를 구분했다. 생물의 변화 과정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것과 “그러므로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 라고 결론 내리는 것은 전혀 다른 종류의 주장이라는 것이다.
켈러는 BioLogos에 기고한 「Creation, Evolution, and Christian Laypeople」에서도 인간의 기원, 역사적 아담, 죄와 죽음 등의 문제를 직접 다뤘다.
빌리 그레이엄도 비슷한 가능성을 열어 두었다
20세기 복음주의를 상징하는 인물 가운데 한 명인 빌리 그레이엄 역시 흥미롭다. 1964년 데이비드 프로스트와의 대담에서 그는 성경과 현대 과학이 반드시 충돌한다고 보지 않았다.
그가 강조한 것은 이것이었다. “성경은 과학책이 아니라 구속의 책이다.”[22]
그는 하나님이 인간을 어떤 방식으로 창조하셨는지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라는 성경의 중심 메시지를 바꾸지 않는다고 보았다.
심지어 하나님이 생물학적 진화 과정을 사용하시고 어느 시점에 인간에게 영적인 차원을 부여하셨을 가능성도 열어 두었다.
존 스토트, C. S. 루이스도 갈등 모델만을 선택하지 않았다
존 스토트는 『Understanding the Bible』에서 아담 이전에 인간과 비슷한 생물들이 오랜 기간 존재했을 가능성과 역사적 아담에 대한 자신의 신앙이 반드시 충돌하지 않는다고 보았다.[24]
C. S. 루이스 역시 『고통의 문제』에서 인간의 창조를 설명하며 하나님께서 오랜 시간 동안 인간이 될 생물학적 형태를 준비하셨다는 방식의 설명을 사용한다.[23] 루이스 역시 생물학적 진화와 모든 현실을 물질만으로 설명하는 철학적 진화주의를 구분했다.
즉 진화를 받아들이면 자동으로 성경의 권위를 포기해야 한다 는 등식은 적어도 역사적인 복음주의 전체를 대표한다고 말하기 어렵다.
프랜시스 콜린스와 ‘진화적 창조’
프랜시스 콜린스는 인간게놈프로젝트를 이끈 유전학자이면서 공개적으로 기독교 신앙을 고백해 온 인물이다. 그의 책 『신의 언어(The Language of God)』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성경의 하나님은 게놈의 하나님이기도 하다.”[21]
콜린스에게 유전체 연구는 하나님을 몰아내는 과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연에서 발견되는 질서를 연구하는 것과 하나님을 믿는 것은 서로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그가 세운 BioLogos는 이러한 입장을 Evolutionary Creation, 진화적 창조라고 부른다. 하나님이 창조주라는 신학적 고백과 생명의 다양성이 진화 과정을 통해 형성됐다는 과학적 설명을 함께 받아들이는 입장이다.
존 월튼은 아예 창세기 1장을 읽는 질문 자체를 바꾼다
휘튼칼리지의 구약학자 존 월튼은 『창세기 1장의 잃어버린 세계』에서 조금 다른 접근을 한다.[25]
그는 창세기 1장을 현대인이 묻는 “물질이 언제, 어떤 물리 과정으로 생겨났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과학적 보고서로 읽는 것 자체를 문제 삼는다. 고대 근동의 문맥에서 보면 창세기 1장의 핵심은 물질의 제조 과정이라기보다 하나님이 혼돈에 기능과 질서를 부여하고 우주를 자신의 성전으로 세우시는 것이라는 해석이다. 이렇게 읽으면 창세기와 현대 과학이 동일한 질문에 서로 경쟁하는 답을 내놓고 있다는 전제 자체가 약해진다.
한국 교회 안에도 이런 논의가 있다
한국에서는 진화에 관한 교단 공식 문서가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많지 않다. 대신 한국창조과학회가 오랫동안 보수 교회 안에서 강한 영향력을 가져왔다. 동시에 최근에는 신앙을 가진 현직 과학자들이 창조 신앙과 창조과학을 구분해야 한다 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 가운데 한 명이 서울대학교 천체물리학자 우종학 교수다. 『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 『과학시대의 도전과 기독교의 응답』과 ‘과학과 신학의 대화(과신대)’ 활동을 통해 그는 창조주에 대한 신앙을 지키는 것과 현대 과학을 거부하는 것이 같은 일이 아니라고 주장해 왔다.[30]
그렇다고 과학이 하나님을 증명하거나 부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반대 방향의 과장도 피해야 한다. 과학은 기본적으로 자연 현상에서 관찰하고 검증할 수 있는 원인을 연구한다.
따라서 진화 이론이 잘 확립되어 있다고 해서 “그러므로 하나님은 없다” 라는 결론이 과학적으로 따라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과학적 결과 위에 철학적 해석을 하나 더 얹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진화를 과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곧 무신론을 받아들이는 것도 아니다. 과학은 생명이 역사 속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변화했는가를 연구할 수 있다.
하지만
왜 우주가 존재하는가,
왜 자연법칙이 존재하는가,
인간에게 궁극적인 의미와 가치가 있는가,
하나님이 존재하는가
같은 질문까지 실험으로 판정해 주지는 않는다.
진화를 받아들이면 기독교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이 부분도 정직하게 말해야 한다. 진화를 기독교 신앙과 양립 가능하다고 보는 순간 새로운 신학적 질문들이 생긴다.
역사적 아담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원죄는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생물학적 죽음이 인간의 타락 이전에도 존재했다면 로마서의 죽음에 관한 표현은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하나님의 형상은 언제, 어떤 의미에서 인간에게 주어졌는가?
이것들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팀 켈러, 존 스토트, C. S. 루이스, 프랜시스 콜린스, 존 월튼 등도 각각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이 문제에 답했다.
따라서 “진화와 신앙은 양립할 수 있다”는 것과 “아무 신학적 문제도 없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내가 이번에 공부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느낀 것
처음 이 자료를 조사한 목적은 진화를 믿으라고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몇 가지 사실부터 확인하고 싶었다.
시조새는 정말 위조로 밝혀졌는가? 아니었다. 위조 의혹은 실제 표본 검사를 거쳐 1986년에 반박됐다.
시조새 하나밖에 없는가? 아니었다. 시조새 표본 자체가 여러 점이고, 공룡과 조류 사이의 형질을 가진 깃털 공룡들이 이후 대거 발견됐다.
과학계에서는 소진화만 인정하고 대진화는 인정하지 않는가? 현재 과학계의 조사와 학술적 합의를 보면 그렇게 말하기 어렵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창조와 진화는 기독교 안에서 반드시 양자택일이어야 하는가?
역사를 찾아보니 그것도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아우구스티누스, 아퀴나스에서 시작해 워필드, C. S. 루이스, 존 스토트, 빌리 그레이엄, 팀 켈러에 이르기까지 성경의 권위와 창조주에 대한 신앙을 붙들면서도 자연 세계의 긴 역사와 자연 과정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본 기독교인들이 존재해 왔다.
마치며
나는 이 글을 쓰면서 한쪽 진영의 모든 주장을 옳다고 선언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신앙과 진화의 관계에는 여전히 어려운 신학적 질문이 있고, 그 질문들은 진지하게 다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한 가지는 조심했으면 한다.
기독교를 변호하기 위해
“시조새는 위조로 판명됐다.”
“과학자들도 대진화를 믿지 않는다.”
“진화를 받아들이는 기독교인은 성경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다.”
같은 사실과 다른 주장을 사용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만약 하나님이 진리의 하나님이라면, 그분을 변호하기 위해 사실이 아닌 것이 필요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오래전에 경고했던 것도 바로 이 문제였다. 자연 세계에 관해 명백히 잘못된 것을 기독교의 이름으로 확신 있게 주장하면, 그것을 아는 사람은 그 잘못만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전하려는 복음까지 의심하게 될 수 있다.
이번 공부를 하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위로가 되었던 것은 이것이다.
창조주를 믿는 것과 창조 세계를 정직하게 탐구하는 것은 반드시 서로의 적일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기독교 역사 속에는 두 가지를 함께 붙들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해 온 긴 전통이 있었다.
참고문헌
시조새와 조류의 기원
[1] O’Connor, J. et al. (2025), “Chicago Archaeopteryx informs on the early evolution of the avian bauplan,” Nature641, 1201–1207.
[2] Foth, C., Tischlinger, H. & Rauhut, O. W. M. (2014), “New specimen of Archaeopteryx provides insights into the evolution of pennaceous feathers,” Nature 511, 79–82.
[3] Voeten, D. F. A. E. et al. (2018), “Wing bone geometry reveals active flight in Archaeopteryx,” Nature Communications 9, 923.
[4] Charig, A. J. et al. (1986), “Archaeopteryx is not a forgery,” Science 232, 622–626.
[5] Xu, X. et al. (2011), “An Archaeopteryx-like theropod from China and the origin of Avialae,” Nature 475, 465–470.
[6] Lee, M. S. Y. & Worthy, T. H. (2012), “Likelihood reinstates Archaeopteryx as a primitive bird,” Biology Letters 8, 299–303.
[7] Godefroit, P. et al. (2013), “A Jurassic avialan dinosaur from China resolves the early phylogenetic history of birds,” Nature 498, 359–362.
[8] Hu, D. et al. (2009), “A pre-Archaeopteryx troodontid theropod from China with long feathers on the metatarsus,” Nature 461, 640–643.
[9] Xu, X. et al. (2014), “An integrative approach to understanding bird origins,” Science 346, 1253293.
[10] Brusatte, S. L., O’Connor, J. K. & Jarvis, E. D. (2015), “The origin and diversification of birds,” Current Biology25, R888–R898.
과학계와 대중의 진화 수용 조사
[11] Pew Research Center, AAAS 과학자 조사, 2009·2014.
[12] Pew Research Center (2019), The Evolution of Pew Research Center’s Survey Questions About the Origins and Development of Life on Earth.
[13] Pew Research Center (2020), Science and Scientists Held in High Esteem Across Global Publics.
[14] Gallup (2024), Majority Still Credits God for Humankind, but Not Creationism.
[15] IAP (2006), Statement on the Teaching of Evolution.
[16] NCSE, Project Steve.
[17] The Clergy Letter Project.
한국 교과서 논쟁
[18] Park, S. B. (2012), “South Korea surrenders to creationist demands,” Nature 486, 14; 이후 Science wins over creationism in South Korea, Nature News.
[19] BRIC 설문, 한국고생물학회 공식 입장,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수정·보완 가이드라인(2012).
신앙과 과학
[20] 팀 켈러, 『팀 켈러, 하나님을 말하다』; “Creation, Evolution, and Christian Laypeople.”
[21] 프랜시스 콜린스, 『신의 언어』.
[22] Frost, D. (1997), Billy Graham: Personal Thoughts of a Public Man.
[23] C. S. 루이스, 『고통의 문제』.
[24] 존 스토트, Understanding the Bible.
[25] 존 월튼, 『창세기 1장의 잃어버린 세계』.
[26] 알리스터 맥그래스, 과학과 종교 관련 저작.
[27] 이안 바버, 『과학이 종교를 만날 때』.
[28] Noll, M. & Livingstone, D. (eds.), B. B. Warfield: Evolution, Science, and Scripture.
[29] 아우구스티누스, 『창세기 문자적 해설』.
[30] 우종학, 『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 및 『과학시대의 도전과 기독교의 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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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편지에는 '하나님'이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 에스라 4~6장
성전 재건을 막으려던 사람들이 페르시아 왕에게 보낸 고발 편지가 에스라 4장 11-16절에 통째로 실려 있습니다. 한번 세어보세요. 그 편지에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몇 번 나오는지.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조공, 관세, 세금, 반역, 옛 기록. 그게 전부예요. 명백한 종교 갈등이었는데도요.
이 관찰 하나로 중고등부 아이들 넷과 20분짜리 게임을 만들었습니다.
준비물
카드 20장. 종이에 인쇄해서 자르면 끝입니다. 20장 전부 에스라 4-6장(과 학개 1장)에 실제로 나오는 말을 그대로 적었어요. 지어낸 문장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고 각 팀 앞에 빈 칸 세 개. 접시 세 개든 포스트잇 세 장이든 상관없습니다.
역할 나누기
- 학생 2명 = 대적팀. 미션은 "왕을 설득해서 공사를 멈춰라."
- 학생 2명 = 건축자팀. 미션은 "왕을 설득해서 공사를 계속하게 하라."
- 선생님 1 = 왕
게임 방법
카드를 섞어서 각 팀에 10장씩 나눠줍니다. 작전회의 2분, 그리고 교환 타임 2분 — 두 팀이 만나서 1:1 맞교환만 가능합니다. 무작위로 나눠줬으니 대적팀 손에 건축자 카드가 들어가 있거든요. "이거 필요해?"라고 묻는 순간 상대에게 정보가 새는데, 그것도 게임의 일부입니다.
본게임은 간단합니다. 두 팀이 번갈아 카드 한 장 내려놓고 30초 설득. 그게 전부예요.
핵심: 규칙을 안 알려줍니다
아이들에게는 "세 칸을 먼저 채우면 이긴다"만 말해줍니다. 왕은 세 마디 중 하나로만 답해요.
- "…계속해 보라" → 성공. 카드가 그 팀 칸에 들어갑니다.
- "그건 이미 들었다" → 실패. 버립니다.
- "그건 짐의 관심사가 아니다" → 실패. 버립니다.
숨은 규칙은 이렇습니다. 카드는 돈 / 반란 / 기록 세 종류로 나뉘고, 세 종류를 하나씩 모아야 이깁니다. 같은 종류를 두 번 내면 "이미 들었다"로 버려져요.
이 두 번째 대사가 이 게임의 발명품입니다. 아이들이 돈 얘기로 성공한 뒤 또 돈 카드를 냈다가 "이미 들었다"를 듣는 순간, "아 종류가 있구나"를 스스로 깨닫습니다. 설명 없이 게임이 가르쳐줘요.
왕은 지루한 표정으로 앉아 있으면 됩니다. "예루살렘? 그게 어디였더라." 아이들이 "왜요?"라고 물으면 이렇게 답하세요. "짐이 그대들에게 설명할 이유가 있는가."
그리고 헛카드 다섯 장
아무 종류에도 속하지 않는 카드가 다섯 장 섞여 있습니다.
- "우리도 너희 하나님을 찾노라" (4:2)
-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느니라" (4:3)
- "성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기뻐하리라" (학 1:8)
- "우리는 천지의 하나님의 종이라" (5:11)
- "우리 조상이 하늘의 하나님을 노엽게 하였나이다" (5:12)
전부 성경 구절입니다. 그리고 교회 아이들 눈에는 이게 덱에서 제일 강해 보이는 카드예요. 그래서 냅니다. 그리고 왕이 하품하며 말하죠. "그건 짐의 관심사가 아니다."
카드가 버려지는 그 순간, 아이들 표정이 바뀝니다. 오늘 수업의 절정이 여깁니다.
마지막 3분, 공개
게임이 끝나면 정답표를 보여주고 4장 11-16절을 같이 읽습니다.

첫째, 20장 전부 성경이었다. 아이들이 방금 한 건 게임이 아니라 본문 그 자체였다는 것.
둘째, 버려진 카드도 다 성경이다. 틀린 말이라서 버려진 게 아니라, 왕에게 한 말이 아니었기 때문에 버려진 겁니다. "우리도 너희 하나님을 찾노라"는 성전 앞에서 한 말이고, 왕에게 보낸 편지에는 신 이야기가 한 줄도 없어요.
셋째, 반전. 대적들은 "옛 기록을 조사해 보십시오"(4:15)라고 요구했습니다. 자기들에게 유리할 거라 확신했죠. 그런데 건축자들도 똑같이 요청합니다(5:17). 그래서 다리오가 정말로 기록보관소를 뒤지고, 악메다 궁성에서 고레스의 조서가 발견됩니다(6:1-2). 결과는 이 명령이었어요.
"강 서쪽 세금 중에서 그 경비를 이 사람들에게 신속히 주어" (스 6:8)
대적들이 사는 그 지역 세금으로 성전을 완공하라는 겁니다. 방해하려고 요청한 조사가, 방해하는 사람들의 돈으로 성전을 세웠어요.
물어볼 것
"'하나님이 명하셨습니다'가 버려질 때 기분이 어땠어? 그 말이 틀린 말이었을까, 아니면 듣는 사람이 달랐던 걸까?"
"왕은 하나님을 몰랐고 끝까지 자기 이익만 챙겼는데, 결과는 성전 완공이었어. 이걸 어떻게 봐야 할까?"
아이들이 "그럼 신앙 얘기는 하면 안 되는 거네요"로 가면 5장 11절을 짚어주세요. 건축자들은 "우리는 천지의 하나님의 종"이라고 먼저 말했습니다. 숨긴 게 아니라 번역한 거예요.
에스라 4장은 방해받는 이야기, 5장은 다시 시작하는 이야기, 6장은 그 방해가 재료가 되는 이야기입니다.
카드 20장, 역할 카드, 정답표, 진행 시트 전체는 아래 링크에 있습니다. 인쇄해서 바로 쓰실 수 있어요.